-
나는 누구인가?
카테고리 없음
2009. 1. 7. 22:44
1976년 11월 14일
한해수, 윤순이의 1남2녀중 둘째로 태어났다.
누나 한수진 여동생 한수경
그리고 나 한상준
태어난 곳은 부산시 진구 가야 어느 조산소
조산소의 산파의 손에 11월 14일 새벽쯤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구사업을 하시고 어머니는 전업주부
결혼전 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경남 창원에서 농사지으시다
부산에 상경하셔서 무직으로 지내셨고
어머니는 70년대 부산의 제1산업인 신발공장에서 일하셨단다
어머니는 일도 없으신 아버지의 꼬임에 속에서 아버지와 결혼을 하시고
당분간 처가 살이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외갓쪽에는 외할머니와 외삼촌
외할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자녀가 둘밖에 되지 않으셨다.
장녀는 어머니는 동생인 외삼촌을 거의 키우시다시피 하셨고
외할머니께서 아버지 없는 자식 둘을 먹여키우셨단다.
그 외갓댁에 아버지까지 엎어서 처가살이로 사셨다니
참 우리 외할머니도 대단하시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아버지께선 가구공장에서 일하시다가
그 가구 공장을 동업으로 받아서 운영을 하시고 있었다.
내가 태어났을텐 다른 동업자들은 떠나고
아버지 혼자 김해에서 가구 공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집은 주례에 있었고 3살쯤 영주동의 영주아파트로 이사를 오게되었다.
나의 나이 3세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나를 맡기고 김해로 출근을 하셨다.
공장 인부들에게 밥을 해 먹여야했기 때문이다.
난 기억이 나질 않지만
영주시장을 혼자서 누비고 다녔다는 설화가 있다.
예쁘진 않았지만(뭐 지금도 예쁜 구석은 어딜 찾아봐도 없다)
그 동네에서 모든 귀여움을 다 받고 자랐다고 한다.
영주시장 아주머니들이 한번 안아볼려고 줄을 섰다는(?) ...
여기 저기 가게란 가게는 다 들어가서 이것 저것 주워먹고
여름이면 식당에 들어가 냉냉 냉냉(냉면)하면서
발음도 되질 않는 냉면을 내 놓으라고 때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영주시장을 하루 종일 누비고 다니면
어머니께서 퇴근하고 오시면
영주시장을 들러서 내가 먹은거 계산하고 집으로 오셨다고 한다.
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영주시장 아줌마들이 돈까지 받았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지만
그래도 내를 이뻐했다니 참 감사하네....ㅋㅋㅋ
그리고 다시 공장이 가까운 김해 강동동 대사리로 이사를 했다.
지금은 부산시 강서구 강동동 대사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부산이 아니가 김해였다.
1985년도인가 그때 부산으로 편입된것 간다.
나의 기억은 대사리에서의 기억이 모둔 생생하고
그때가 6살인것 같다. 우리가 살던 곳이 고속도로 옆에 소나무밭 옆이었다.
주인집 형이름이 '대길이'였는데 우리는 그 집을 대길이 집이라고 불렀다.
그 집중인 형들과 마당에서 그리고 우리집에서 놀고 했던 기억이 난다.
동생이 내가 6살때 태어났다.
내가 동생있는 친구들을 보며 어머니께 동생을 나아 달라고 보챘나 보다
어머니께 '엄마 엄마 동생 나 주세요. 내 밥 안먹을 테니깐 내밥까지 엄마 다 먹고
배 불러서 동새 나 주세요' 했단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밥 안먹으면 힘도 없고 움직이지 못할텐데 괜찮겠나?'
라고 저에게 물으시니깐 제가'나는 힘없으면 가만히 누워있으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동생 나 달라고 계속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족 계획이 변경이 되었는지
계획이 없던 동생이 덜컥 생겼다.
원래 동생은 계획에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병원까지 가셔서
모든 문(?)을 닫았는데 다시 검사해보니
문(?)이 다시 열려서 동생이 생겨버린 것이다.
하하하 어쨌든 내가 6살 되던 8월에 동생이 태어났고
어머니는 동생을 등에 매고 땀을 흘리시며 다니셨다.
아직 유치원은 가질 않았다.(아마도 거기 유치원이 없었던 모양이다.)
온동네를 누비며 동네 형들이랑 몰려다니고 집으로 까지 데리고 와서
집을 어지럽히고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
다음해 여름 유치원을 다니는 7살이 되던해
한번은 어머니께서 수박화채를 해서 냉장고에 가득 넣어놓고
동생을 등에 업고 공장에 밥을 해주러 다녀오셨는데
그날 따라 너무 더워서 오시는 길에
냉장고에 있는 수박화채를 시원하게 먹을 생각으로 집으로 오셨나보다.
근데 냉장고 문을 여니 수박화채가 하난도 없이
깨끗하게 그릇이 비워져 있었다.
나를 붙들고 물어보니 주인집 형들을 데리고 와서
깨끗하게 다 먹어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얘기를 하신다.
정말 수박화채를 기대하시면서 그 긴 선암다리를
동생을 엎고 오셨나 보다.
그리고 유치원시절 대사유치원을 다녔다.
그 동네에선 유일하게 있는 유치원
그리고 내가 1회 유치원생
동네가 만들어지고 대사성결교회에서 동네 아이들을 위해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선생님 한분께서 유치원을 시작하셨나보다.
.
.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