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은 그림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 자체가 이미 회화요, 빛이요, 구도이기 때문이다. 벽이 있기에, 시야를 가리는 밋밋한 차폐막이 있기에 그림을 붙인다. 붙인다기 보다는 뚫는다. 원시인의 동굴에 알타미라 같은 벽화가 발견되는 것은 바로 그 동굴을 뚫어 들판의 짐승, 숲 속의 사슴들에게 나아가려고 한 것이다. 그림을 붙이는 순간 그만큼의 벽은 사라진다.
[생각 中 think 다섯 - 이어령]
아오모리의 벽화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에 징용온 조선사람이
아오모리 탄광의 어두운 벽을
손톱으로 긁어 글을 썼대요.
어무니 보고시퍼
고향의 그림우이 글이 되고
글미이 되어
남의 땅 벽 위에 걸렸대요.
아이구 어쩌나 어무니 보고시퍼
맞춤법에도 맞지 않으 ㄴ보고싶다는 말
한국말 '싶어'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언어
배에 붙으면 먹고 싶어 배고프고
귀에 붙으면 듣고 싶어 귀고프고
눈에 붙으면 보고 싶어 눈고프고
가슴에 붙으면 가슴 아파 가슴고프고
"마음의 붓으로 그려 바친 부처님 앞에 어드린 이 몸은...."
[보현십이가]의 한 이두문자처럼 해독하기도 힘든 그림움이 된대요.
옛날 옛적 이 일본 땅에 끌려온 조선 청년이
탄광 벽을 손톱으로 긇어 글을 썼대요.
어무니 보고시퍼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벽을 긁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은 벽을 넘는다.
날마다 벽을 쌓고 산다. 그리고 그 벽이 누군가에 무너지기를 바란다. 풀리지 않는 모순. 벽을 넘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니 쌓을때 병풍같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벽을 쌓으면 된다. 나의 벽을 누구나가 허물을 수 있도록